1. 정의

 혈액응고 인자가 선천적으로 부족하여 발생하는 질환으로 반복되는 출혈과 출혈 시에 혈액 응고의 장애를 일으키는 병이다. 혈우병은 결핍된 혈액응고 인자의 종류에 따라 분류되는데 8인자 결핍의 A형과 9인자 결핍의 B형이 전체의 95% 이상을 차지하며 임상적으로는 두 형에 있어서 구별은 안 된다. 그리고 11인자의 결핍 시 C형과 그 외 혈소판 기능장애와 함께 8인자 결핍이 같이 있는 Von-Willebrand 병으로 나누어진다.

http://myhome.shinbiro.com/~mugol/special/review1/review1-3-1.htm


2. 특성 및 증상

  만성 열성 유전인자는 여성염색체인 X염색체의 긴팔(long arm) 말단부에 있고, 이 병적 인자를 가진 염색체(x)는 정상 여성염색체(X)에 의하여 불 활성화된다. 따라서 이러한 여성(xX)은 보인자 (carrier)로서 임상적인 출혈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성향을 2세에게 물려주게 되며, 병적 염색체(x)를 억제할 정상염색체(X)를 갖고 있지 않은 남성(xY)의 경우에는 혈우병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즉 혈우병자 남성(xY)과 정상여성(XX)과의 사이에서 태어나는 남자아이는 모두 정상(XY)이나, 여자아이는 모두 보인자(xX)가 된다. 반면에 보인자 여성(xX)과 정상남성 (XY)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녀의 경우에는 남자아이의 반수가 혈우병이 되고, 여자아이의 반수는 보인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유전성 질환으로 동일 가계 내에 혈우병 환자가 있는 가족력은 70% 미만(한국의 경우 약 50%) 이며, 가족력이 없는 경우는 돌연변이에 의하여 혈우병인자(hemophilia factor)가 획득된 결과이고, 그밖에 기억하지 못하거나 숨기는 경우도 있다. 발생빈도는 출생하는 남자아이 4,500-13,000명당 1명, 생존 남자아이 10,000-30,000명당 1명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확실한 통계가 없지만, 이러한 통계를 적용하면, 인구를 수천만으로 가정할 때, 생존 남자아이 또는 남성이 700-2,000명 정도 있을 것이며 매년 약 50-100명의 혈우병 환자가 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혈우병 A가 70-80%이고, 혈우병 B가 10% 전후, 그리고 나머지가 혈우병 C로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통계(대한혈액학회,1976)에 따르면 A형이 81%, B형이 15%, 그리고 C형이 4%이다.

 증상은 아주 사소한 외상(할큄, 꼬집음, 면도상처, 이 뽑기 등)에 의해서도 심한 출혈이 계속되며 외상이 없는데도 출혈이 초래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출혈은 다른 혈소판 혹은 혈관장애로 인한 출혈과는 달리 외상 직후부터 시작되지 않고 일단 지혈되었다가 수 시간 또는 수 일 후에 출혈이 나타난다. 피부표면 보다 깊은 심부조직에서 발생하는 지연성 출혈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학적으로 혈관절증(hemarthrosis)이 뚜렷하며, 대부분의 중요한 관절, 즉 무릎, 팔꿈치, 발목, 어깨, 그리고 손목 등의 관절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출혈경향(bleeding tendency)은 혈중에 존재하는 항 혈우병 요소(antihemophilic factor)의 양(농도)에 따라서 좌우되며, 중증(0-2%), 중등(2-5%), 경증 (5-20%), 그리고 아형(25-50%) 등으로 임상적 구분을 한다.

http://www.khmc.or.kr/counsel/sense/mcsense/sence8_14.htm




3. 역사적인변천


■ 베일 속에 가려진 고통의 극복

 19세기까지도 혈우병은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미스터리였다. 원인모를 출혈로 사경에 이르도록 출혈을 멈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오랜 세기를 지나왔다. 인간이 혈우병의 윤곽을 확인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초엽이다. 금세기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혈우가족이 생명을 잃어왔다. 오늘날 선진 각 국은 혈우병 환자에 대한 복지대책이 잘 수립되어 있다. 그러나 구미 각 국을 제외한 중진 및 후진국에 속한 세계 여러 나라는 대책이 미진한 실정이다. 심지어 일부 국가는 모른 척 방치하는 경향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20년 이전에는 거의 속수무책으로 살아왔다. 최근에 이르러 선진화된 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2001년부터 실시한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비지원 사업에 혈우병을 포함시킨 게 그것이다. 국가가 본격 보호시책을 택했으나 아직도 혈액응고제제의 제한 투여 등 많은 시정점이 남아있다.


■ 초창기의 출혈 역사

 혈우병이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은 2세기경의 탈무드에서 할례(割禮) 도중에 두 형제가 출혈로 사망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유전 역사는 오래된 게 분명하다. 다음은 12세기 아랍의사 알부카시스(Albucasis)가 경미한 출혈로 남자가 사망하였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다. 구체적이고 소상한 내용은 1803년 필라델피아의 의사 존 코나드 오토(John Conrad Otto)가 특정 가족을 대상으로 3대에 걸쳐 실시한 조사 보고다. 의사 오토는 어느 한 가계의 조사 결과 출혈성 소인(素因)으로 말미암아 유전적으로 남자에게만 영향이 미친다고 보고하였다. 이 가계의 연구로 건강한 어머니를 통하여 아들, 손자, 증손자까지 출혈이 멎지 않는 병이 전하여 진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 혈우병이란 용어 등장

 혈우병(Hemophilia)이라는 용어는 1823년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교수 쇤라인(Schonlein)의 제자 호프(Hopff)라는 의사에 의하여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영국의 한 의사는 1840년 혈우병의 원인이 혈액 속에 들어있어야 할 어떤 물질의 결여에서 비롯되었다고 가정하였다. 이 의사는 혈우병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혈액을 수혈하여 지혈시킴으로써 자신의 가정을 증명하였다.


■ 왕실혈우병의 등장

혈장을 얼렸다가 녹일 때 바닥에 가라앉은 작은 눈송이 같은 침전물 속에 8번 응고인자가 들어있다는 사실은 1965년 미국 스텐포드대학의 쥬디시 G. 풀(Judith Graham Pool)박사에 의하여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풀박사는 침전물을 크라이오프레시피테이트(cryoprecipitate)라고 명명하고 파우더로 만들어 필요할 때 액체로 녹여서 쓸 수 있도록 하였다. 1966년 박스터(baxter)사는 크라이오프레시피테이트를 생산하여 최초의 상업제품이 등장하였다. 이 파우더로 인자농축제를 만들어 혈우병 환자가 응고인자를 맞도록 하였다. 한편 학자들은 헌혈된 혈액에서 혈장만 취하고 나머지는 되돌려 주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따라서 더욱 많은 혈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유�ϨϨ͒ɘꘘ;Ϩ͒ɘꘘ;Ϩ͒ɘꘘ;Ϩ͒ɘꘘ;Ϩ͒ɘꘘ;Ϩ͒ɘꘘ;


■ 고식성(姑息性)치료에 의존한 시대

 해결책 없이 안정만 추구한 1900년대 초반, 출혈기전에 대한 많은 연구가 시도되었다. 산소, 갑상선, 골수, 젤라틴 등이 실험적으로 투여되었다. 또 비장절제, 수혈, 칼슘, 체액주사, 비타민, 여성호르몬 치료 등이 시도되었다. 의사들은 1930년대에 이르러 병의 정체를 혈소판 이상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혈소판은 핏속 작은 세포의 일종으로 혈액 1리터에 1천5백억∼4천5백억개가 들어있다. 혈소판의 수가정상보다 적거나 혈소판의 기능이 떨어질 때도 멍이 잘 들거나 출혈이 계속될 수 있다. 혈소판이 원인이 된 출혈은 대개 사람 몸의 표면에서 일어난다. 실제로 피하출혈, 구강점막 출혈, 코피, 월경과다 등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 혈우병 환자는 혈소판의 수와 기능은 정상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의사 페이텍(Patek)과 테일러(Taylor)교수는 1937년 혈액응고의 이상을 발견하였다. 이들은 혈장으로부터 얻은 물질을 첨가하여 응고가 바로 잡아짐을 발견하고 안티 헤모필릭 글로블린(Anti-hemophilic Globulin)이라고 이름하였다. 혈우병 치료에 1950∼1960년까지 10년간은 전혈(Whole blood)과 신선혈장(Fresh plasma)을 사용하였다. 전혈과 혈장에는 충분한 양의 인자가 없다. 따라서 결핍상태가 심한 혈우병 환자는 아동기나 초기 성인기까지만 생존이 가능하였다.


■ 응고인자의 발견

 혈장을 얼렸다가 녹일 때 바닥에 가라앉은 작은 눈송이 같은 침전물 속에 8번 응고인자가 들어있다는 사실은 1965년 미국 스텐포드대학의 쥬디시 G. 풀(Judith Graham Pool)박사에 의하여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풀박사는 침전물을 크라이오프레시피테이트(cryoprecipitate)라고 명명하고 파우더로 만들어 필요할 때 액체로 녹여서 쓸 수 있도록 하였다. 1966년 박스터(baxter)사는 크라이오프레시피테이트를 생산하여 최초의 상업제품이 등장하였다. 이 파우더로 인자농축제를 만들어 혈우병 환자가 응고인자를 맞도록 하였다. 한편 학자들은 헌혈된 혈액에서 혈장만 취하고 나머지는 되돌려 주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따라서 더욱 많은 혈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 순수한 응고인자의 분리

 혈우병 A형, B형 환자는 자신에게 부족한 응고인자 한 가지만 보충하면 된다. 그러나 농축제에는 다른 혈장을 비롯하여 다른 인자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응고인자가 분리되기 이전에는 혈액을 송두리째 맞아야 하였다. 그런 이후의 시절에는 혈장을 모두 맞아야 하였다. 혈장에서 응고인자를 추출하여 사용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그 속에 있는 온갖 불순인자의 침범을 감수하여야 하였다. 이러한 전혈과 혈장의 투여는 간염 등 많은 문제를 동반하였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의 브런치 블럼버그(Brauch Blumberg)박사는 1964년에 항체반응을 일으 킨지 몇 주 이후에 B형 간염바이러스의 코팅된 표면에서 입자가 결합된 항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 미국의 필라델피아 제너럴 종합병원(PGH)에서만 1963∼1964년 사이에 56명 중에 10명(17.9%)이 수혈로 인한 감염환자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1968∼1969년 사이에도 78명 중에 14명(17.9%)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항원이 발견된 이후 5년이 경과한 1969년 처음으로 B형 간염 진단시약이 개발되었다. 새로운 진단시약으로 인하여 수혈로 발생되는 간염, 즉 주로 B형 간염을 급격하게 저하시키게 되었다. 보고에 따르면 최초로 개발된 진단시약의 도입으로 수혈에 의한 감염률은 17.9%에서 5.9%로 낮추어지기에 이르렀다.

■ 항혈우병 인자의 국내생산

 세계보건기구(WHO) 협력기관으로 세계혈우연맹(The World Faderation of Hemophilia)이 1963년 출발, 혈우병 환자를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혈우병제제의 공급을 맡아 온 일본의 미도리십자사(綠十字社)는 1974년 대한적십자사로 하여금 세계혈우연맹에 가입하도록 추천하였다. 그리고 혈우병 치료제 AHF(항혈우병인자 : anti-hemophilic factor) 생산용 기자재를 지원하겠다는 제의를 하였다. 대한적십자사는 당시 혈액분획제제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주)녹십자에 인계하였다. 일본은 당시에 대외협력처(OTCA)에서 항혈우병 인면역 글로블린(AHF) 제조에 필요한 기자재를 녹십자에 기증하였다. 그리고 녹십자의 혈액분획제제 제조공정에서 생산되는 항혈우병 인면역 글로블린 일정량을 대한적십자사에 무상으로 공급하게 하였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에 따라 1974년 4월 2일 (주)녹십자에 항혈우병 인면역 글로블린(AHF)이 품목허가 되었다. 그로부터 약 1개월 후인 5월에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일본 OTCA 제공 기자재는 NY식 원심분리기와 냉동고 등이었다.


■ 고순도 제제와 9인자 제제 개발

 정제방법의 연구를 통해 1960년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에 걸쳐 개선된 제제가 개발되었다. 당시 대표적인방법은 폴리에틸렌 글라이콜(polyethylene glycol)법과 글리신 침전 법이었다. 이 두 가지 방법에 의한 제제는 냉각에 의하여 생산되는 침전물(cryoprecipitate)로 만든 제제 보다 10배 이상의 순도를 가지게 되었다. 혈우병 치료제 9인자에 대한 임상적인 연구는 1970년대에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임뮤노(Immuno)사는 활성화된 혈액응고 9인자를 함유하는 제제 FEIBA를 1982년에 개발하였다. 이 제제는 항체 보유 환자 치료를 위해 1983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 AIDS 진단시약 혈장검사 사용

 미국의 질병통계센터(CDC)는 1982년 1월 혈우병 전문가 브루스 에바트(Bruce Evatt)박사로 부터 동성연애자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뉴모시스티스 폐렴(Pneumocystis Pneumonia)으로 인한 사망이 혈우병 환자로부터 발생한 사실을 보고 받았다. 질병통계센터는 이 질병이 혈액을 통하여 감염된 것으로 일단 의심하였다. 그런 다음에 여러 가지 조사를 통하여 닥쳐올 연관성을 파악하고 위험성을 경고하고 병명을 AIDS로 붙였다. 이듬해인 1983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몽따뉴 박사와 미국 NIH의 갈로(Galo) 박사가 각각 AIDS 바이러스의 분리에 성공하기에 이른다.


■ 바이러스 멸균공법의 개발

 혈우병 치료제에 침범할 가능성이 높은 바이러스를 멸균하는 공법의 개발이 1983년에 이루어졌다. 이듬해 1984년에 미국의 분획제제회사들은 멸균공법을 도입하는 허가를 받기 시작하였다. 멸균공법이 개발 된지 2년 만인 1985년에 열처리된 제제가 공급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3월에 미국 NIH에서 효소결합면역흡착검사법(ELISA : Enzyme-Linked Immuno Sorbent Assay)이 개발되었다. 아보트 라보레이토리스사(Abbott Laboratories)에서 처음으로 AIDS 진단시약이 생산되었다. 같은 해 여름, 미국 6개 회사에서 생산에 참여하여 그 해 10월에 혈장검사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녹십자가 1986년 미국에서 AIDS 진단시약을 수입하여 혈장검사에 사용하였다. 그리고 1986년에 열처리를 거친 혈우병 8인자 치료제가 생산 공급 되었다.


■ 8인자 옥타비의 첫 생산과 공급

 이온교환 수지를 이용한 정제법이 1987년에 개발되어 고순도 제제가 공급되었다. 같은 해에 화학적 멸균공법, 증기가열 멸균법이 미국과 유럽 각 국의 제조사에서 채택되기 시작하였다. 박스터사는 이듬해인 1988년 처음으로 단일클론성(Monoclonal) 정제법으로 만든 8인자 혈액응고제제를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주식회사녹십자는 뉴욕혈액센터(NYBC)를 통하여 화학적 불활화공법을 1988년에 도입하였다. 이듬해인 1989년에 화학적 불활화공법을 시설, 이 해 말 경 '옥타비'를 시판하게 되었다. 옥타비는 1995년 그린에이트로 바뀌어 2001년 초까지 공급되었다.


■ 훽나인의 생산과 공급

 미국의 오르토(Ortho)사와 아보트(Abbott)사에서 1990년 C형 간염 진단시약이 개발되어 혈액검사에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진단시약은 한 가지 종류의 항원만 가지고 제조되었으며 특이도는 50∼70%였다. 개발 이후 2년간 이 시약이 사용되어 오다가 1992년에 3∼4가지 종류의 항원으로 만든 개선된 시약이 공급되기에 이르렀다. 화학적 불활화 공정과 이온교환수지로 8인자 제제를 생산한 (주)녹십자는 동일한 방법으로 훽나인을 1991년에 생산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혈우병 A형과 B형 제제의 공정상 다른 점은 A형은 혈장을 얼렸다 녹여서 침전된 것을 택하고 B형은 침전상층혈장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B형에서는 2회의 이온교환수지에 의하여 정제한다. 같은 해에 사회복지법인 한국혈우재단의 설립이 추진되었다. 그런 다음 이듬해인 1991년 2월 11일 정식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 유전자치료와 미래의 전망

 미국의 박스터사는 유전자 재조합 8인자제제를 1992년에 공급하기 시작하였으며 1997년 유전자치료의 임상이 시작되었다. 국내에서도 순도가 높고 안전성이 확보된 제제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다. 이에 센티온사의 모노클레이트-P 가 수입되었고, (주)녹십자는 미국의 (주)박스터로부터 제품의 생산 공정과 생산시설의 기술이전을 받아 8인자 제제인'그린모노'를 2001년부터 생산 공급하였다. 그린모노는 제8응고인자의 단일 클론 항체를 이용하여 정제한 고 순도 제제로 국내에서는 처음 생산된 제품이다. 2003년부터는 외국에서 생산된 8인자와  9인자 유전자 재조합제제를 우리나라 혈우병 환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국산 유전자 재조합 8인자 제제도 2005년경에는 공급될 예정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혈우병의 연구와 치료 방법은 꾸준히 발전하여 왔다. 앞으로 혈우병 환자에게 주어질 궁극적인 지표는 유전자 치료가 되리라고 본다. 우리나라 혈우병 환자들은 아직도 만족스럽지 못한 치료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 보다 나은 길을 찾고 있다. 하루하루 좀 더 알찬 미래로 다가서기 위하여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http://www.kohem.org/Index.asp (한국혈우재단)


4. 치료방법(치료역사이야기, 약물치료, 물리치료, 수술치료)

 ■ 치료에 대한 최초의 시도

 오랜 세월동안 출혈에 대한 좋은 치료방법이 없었다.

1840년 영국의 한 의사가 혈우병은 혈액 속에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건강한 사람의 혈액을 수혈해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출혈이 멎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발견이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혈우병 가계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가계일 것이다.

1853년 여왕은 여덟 번째 아이인 레오폴드를 낳았는데, 그가 혈우병이었다.

당시의 왕자, 공주들은 다른 나라의 왕가와 혼사를 맺었는데, 빅토리아 여왕의 딸들도 스페인, 독일, 러시아 등으로 출가하여 거기서 아들, 손자에게 혈우병을 전해주었다. 여왕과 그녀의 가계가 매우 중요하였으므로 혈우병 또한 중요시되어 이전보다 많은 연구가 행해졌다. 레오폴드 왕자는 중증 혈우병이었고 당시 출혈을 멈출 특별한 방법이 없었음에도 완벽한 시중과 손상에 대한 철저한 보호 속에 31세까지 살았으며, 결혼하여 자녀까지 두었다.

독일에서 1889년에 태어난 여왕의 외손자 왈드마르는 레오폴드보다 더 완벽한 보호를 받았고 수혈도 받았으며 56세까지 살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 중 하나인 알렉산드라는 러시아로 시집가서 1904년에 알렉시스라는 혈우병 아들을 낳았다. 그도 출혈을 멎게 하기 위해 특별한 음식을 먹어 보기도 하였고, 무릎관절의 출혈이 있었을 때 나무껍질로 다리를 싸서 압력을 가해보기도 하였다. 또한 성직자가 출혈 시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황홀경에 빠뜨려 알렉시스가 통증을 잊고 마음을 편안히 갖도록 하였다.

여왕의 또 다른 손녀는 스페인 국왕과 결혼하여 알폰소라는 혈우병 아들을 낳았는데, 그는 어머니에게 몹시 화를 내고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1935년 작은 수술시 출혈이 심하여 비장이 없는 사람의 혈액을 수혈 받고 회복되었다. 새로운 치료에 대한 연구 1900년대 초까지 출혈 기전에 대한 많은 연구가 행해지며 지혈을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산소, 갑상선, 골수, 젤라틴 등도 주어보았고 비장 절제나 수혈, 칼슘이나 여러 가지 체액의 주사, 비타민이나 여성 호르몬 치료 등이 시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우병 환자들의 수명은 짧았고 매우 힘들게 살아갔다.

1934년 하트리지 교수는 어떤 뱀의 독이 혈액응고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뱀 독을 약화시켜 혈우병 환자의 구강 출혈 부위에 팩킹해 보았다. 출혈은 멎었지만 뱀독은 매우 위험하며 내부 출혈에는 적용시킬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의사들이 수혈을 해주고 있고, 혈액에 대한 연구 결과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혈액의 액체 성분인 혈장이 혈우병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혈장에는 여러 가지 단백질이 들어있는데 그중 일부가 응고 인자이며 그중 하나가 8번 또는 9번 인자이다. 처음에는 혈액 전체로부터 혈장만을 분리하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또 하나의 발견은 인체의 혈액응고에는 두 가지 계통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외인계로서 작은 열상이나 찰과상에 의한 출혈에 대한 지혈계통이고, 또 하나는 내인계로서 관절이나 근육 등 내출혈에 대한 지혈기전이다. 혈우병은 이 내인계의 결함이다.

혈장의 수혈은 혈우병 치료에 놀라운 발전을 가져다주었지만 지혈에 충분한 양의 인자를 보충해주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혈장을 주어야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에 응고인자만을 분리해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 혈장으로부터 응고인자의 분리

 1965년 풀 박사는 얼린 혈장을 녹일 때 용기 바닥에 작은 눈송이 같은 침전물이 가라앉는 것을 발견했으며 여기에 많은 8번 인자가 들어있음을 알아냈다. 이 침전물을 크라이오프레시피테이트(cryoprecipitate) 라고 불렀으며 이의 발견은 혈우병 치료의 새 장을 열었다.

그리고 곧 이 크라이오프레시피테이트를 파우더로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액체로 녹여 쓸 수 있게 하였는데, 이 파우더를 인자 농축제라고 한다. 농축제의 개발로 환자들은 가정에서도 보다 편리하게 응고인자를 맞을 수 있게 되어, 더욱 정상적인 삶을 누리게 되었다. 또한 과학자들은 헌혈자들에게서 혈장만 취하고 혈액의 다른 성분들은 다시 돌려주는 방법을 발견하여 더 많은 헌혈 혈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http://www.kohem.net/